여행 이야기

대한민국 반 바퀴 1박2일 여행중 낙안읍성편.

지리산.. 2009. 6. 17. 09:49

 

남원 광한루와 산수림농원에서 하루밤을 지내고..

담날 일정대로 낙안읍성과 보성다원을 찾아나선다..

낙안읍성으로 이동중 구례을 지나 지리산옆으로 지나가는데

이곳까지 와서 눈으로만 구경하고 지나가니 그렇다...^^

 

혼자 온것이 아니라 차만 7대가 움직이니..

 

그냥 조용히 지나간다..

 

고흥이정표을 보면서 갑자기 외나로도가 생각이난다..

나로 우주센타도 보고싶지만

이곳도 시간과 일정때문에 다음으로...ㅠㅠ

 

낙안읍성과 벌교꼬막으로 점심을 먹고..

 

 

 

지리산..

신호대기중에 한장...

 

 

 

 

낙안읍성 진입중..

 

 

 

 

우리식구들..

차가 몇대 안보인다.

 

 

 

 

낙안읍성에서 본 금전산667.9m

 

 

 

 

 

 

 

 

자 ~~저 성문안으로..

 

 

 

 

 

 

 

 

 
 
순천시 낙안면에 소재한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넓은 평야지에 축조된 성곽으로 성내에는 관아와 100여 채의 초가가 돌담과 싸리문에 가려 소담스레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옛 고을의 기능과 전통적인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는 서민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현재85세대 229명이 살고 있음)에도 보고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전통문화로서, 낙안읍성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대동여지지(大同與地志), 여지도서(與地圖書), 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 地理志)에 수록되어 있고 단행본으로서 낙안읍지 읍선생안 합편(邑先生安合編)과 노인당지(老人堂誌)가 있는데, 이들 문헌을 근거로 낙안의 역사를 종합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낙안은 먼 옛날 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의 54국 중 신분활국(臣墳活國)이었으며, 백제시대에는 분차(分嵯), 분사(分沙), 부사(夫沙)라고도 불리운 파지성(波知城)이었고, 통일신라 경덕왕 16년에는 분령군(分嶺郡)으로 조양(兆陽), 충렬(忠烈), 백주(栢舟), 동원(董原) 4개의 속현(屬縣 현 보성군 고흥군 일대)을 가졌다.

고려시대에는 태조 23년(940년)에
양악(陽岳), 낙안(樂安)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 뒤 고려 헌종 9년(1018년)에는 나주부(羅州府)에 소속되었고, 고려 명종 2년(1172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뒤에 다시 지군(知郡)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세조 12년(1466년) 지군(知郡)에서 군수(郡守)로 고쳤으며 중종 10년(1515년) 군내에서 불미한 사건이 발생하여 현령(縣令)으로 격하되었다가 선조 8년(1575년)에 다시 군(郡)으로 승격하였다. 19세기말까지 낙안 군수는 순천진관병마동첨절제사( 順天鎭管兵馬同僉節制使)를 겸했다.

순종 1년 (융희 2년) 1908년 10월 15일 칙령 제72호로 낙안군이 폐지되면서 순천군 낙안면이 되었고, 1949년 8월 14일 순천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승주군 낙안면이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에 의하여 순천시와 승주군이 통합됨으로써 현재의 순천시 낙안면이 되었다.

낙안읍성은 대개의 성곽이 산이나 해안에 축조되었는데 반해, 들 가운데 축조된 야성(野城)으로 외탁(外托)과 내탁(內托)의 양면이 석축으로 쌓여 있는 협축(夾築)으로 이루어졌다는 큰 특징이 있다. 이곳 낙안 평야지에 있는 읍성으로서 연대를 살펴보면 조선 태조 6년(1397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襄惠公)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고 왜구를 토벌하였다. 그 후 인조 4년(1626년 5월 ∼ 1628년 3월) 낙안 군수로 부임한
충민공(忠愍公)임경업(林慶業) 군수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조선왕조실록 세종편에 의하면 세종6년(1423) 전라도 관찰사의 장계 내용에 "낙안읍성이 토성으로 되어 있어 왜적의 침입을 받게 되면 읍민을 구제하고 군을 지키기 어려우니 석성으로 증축하도록 허락하소서" 하니 왕이 승낙하여 세종9년(1426) 되던 해에 석성으로 증축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 이설이 있다.

성곽의 길이는 1,410m, 높이 4∼5m, 넓이 2∼3m로서 면적 41,018평으로 성곽을 따라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있었으나 북문은 호환(虎患)이 잦아 폐쇄하였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동문은 낙풍루(樂豊樓) 남문은 쌍청루(雙淸樓) 또는 진남루(鎭南樓)라고 하고 서문은 낙추문(樂秋門)으로서 성문 정면으로 ㄷ자형 옹성(瓮城)이 성문을 외워 감싸고 있다. 여장엔 활을 쏠 수 있도록 사방 1尺정도의 총안(銃眼)=사구(射口)가 있고 이 총안 역시 근총(近銃)과 원총(遠銃)으로 나누어 있다. 또 여장이 타구(朶口)로 나뉘어 있고 성곽을 따라가면凸 형의 성곽이 있는데 이는 치성(雉城)이라고 한다. 당초 6곳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4곳만 남아 있다. (일부 복원함) 이 치성은 초소(망루) 역할을 했던 곳으로 좌우로 침입하는 적의 동태를 살피기도 하고 성벽을 타고 오르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축조되었다.

그 동안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특히 6.25사변 이후 많은 훼손을 가져왔으나, 1983년 6월 14일 성과 마을(동내리, 남내리, 서내리)이 국내 최초로 함께 사적지(사적 제302호)로 지정이 되면서 1984년부터 3∼4년에 걸쳐 복원작업이 완료되었다. 여장은 동문(낙풍루), 남문(쌍청루) 주변만 복원된 상태이고, 서문(낙추문) 옆 성곽에도 여장이 복원될 계획으로 있다.

그리고 낙안읍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조선시대 지방계획도시로서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를 신청하고 낙안읍성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터..

 

 

 

 

 

 

 

 

 

 

 

 

 

 

 

인절미 만드는중...

 

 

 

 

 

 

 

 

 

 

 

 

 

 

 

 

 

지훈이 인절미 하나 얻어먹고..

 

 

 

 

 

 

 

 

 

 

 

 

 

 

 

 

 

 

 

 

 

 

 

 

 

 

 

 

 

 

 

 

 

 

 

 

 

 

 

 

 

 

 

 

 

 

 

 

 

 

 

 

 

 

 

 

 

 

 

 

 

 

 

 

 

 

 

 

 

 

 

 

 

 

 

 

 

 

 

 

 

 

 

 

 

 

 

 

 

 

 

 

 

 

 

 

 

 

 

먹으면 임자..

 

 

 

 

 

 

 

 

 

 

 

 

 

 

 

 

 

 

 

 

 

 

 

 

 

 

 

 

 

 

 

 

 

 

 

 

 

 

 

 

 

 

 

 

 

 

 

 

 

 

 

 

 

 

 

 

 

 

 

 

 

 

 

 

 

 

 

 

 

 

 

 

 

 

 

 

 

 

 

 

 

 

 

 

 

대장금 촬영장..

 

 

 

 

한참 목구멍 볼륨높이고 계신다..

 

 

 

 

 

 

 

 

 

 

낙안읍성을 한눈에...

 

 

 

 

 

 

 

 

 

 

 

 

 

 

 

 

찍사들 사진찍는다고 더운날씨에 고생많다..

 

 

 

 

 

 

 

 

 

 

 

 

 

 

 

 

 

 

 

 

 

날 더우니 표정이 뭐 하다..^^

 

 

 

 

 

 

 

 

 

 

 

 

 

 

 

 

 

 

 

 

 

 

빨래터..

 

 

 

 

 

 

 

장돗대...

 

 

 

 

한 400년 은행나무..

 

 

 

장터..

 

 

 

 

성곽위에서..

 

 

 

 

 

 

 

 

 

 

 

 

 

 

 

 

 

 

 

 

 

 

 

 

 

벌교에서

꼬막 정식으로 점심을..

 

 

 

 

 

 

 

 

 

 

 

 

 

 

 

자~~~배도 부르고..

보성에 가서 차나 한잔 하지..

 

보성편으로 이동..

 

 

 

 

 

 

 

 

배낭과 항상 생활하실길...

 

 

             

 

치밭목 산장(조권식) 올림 치밭목산장 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