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여행 이야기 ...
경주 석굴암..불국사..
석굴암에서..
저 뒤가 동해 감포쪽인데..
시간이 없어 생략..
석굴암 입구에서..
유진이와 지훈이..
윤정이와 애들과는 처음이다..
평택에 올라오기전에는 경주도 자주왔는데..
지훈이..
*
*
*
*
*
http://www.sukgulam.org/ 클릭하면자료가..
종 목 | 국보 제24호 |
---|---|
명 칭 | 석굴암석굴(石窟庵石窟) |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불전 |
수량/면적 | 1기 |
지 정 일 | 1962.12.20 |
소 재 지 | 경북 경주시 진현동 891 석굴암 |
시 대 | 통일신라 |
소 유 자 | 석굴암 |
관 리 자 | 석굴암 |
일반설명 | 전문설명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軀)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주실 안에 모시고 있는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본존불은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로움이 저절로 전해질 듯 하다.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 현재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
석굴암가는길에..
10년만에 오는것 같은데..
석굴암에서본 세상..
휴가철에 주말이라 사람이많다..
참 날씨좋다..
http://www.bulguksa.or.kr/ 클릭하면 자료실..
종 목 | 사적 및 명승 제1호 |
---|---|
명 칭 | 경주불국사경내(慶州佛國寺境內) |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사찰 |
수량/면적 | 388,780㎡ |
지 정 일 | 1963.03.28 |
소 재 지 |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
시 대 | 시대미상 |
소 유 자 | 국유,종교(불국사),사유 |
관 리 자 | 경주시 |
일반설명 | 전문설명 경주 토함산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짓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다. 이후 조선 선조 26년(1593)에 왜의 침입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이후 극락전, 자하문, 범영루 등의 일부 건물만이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친 발굴조사 뒤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불리는 3층 석탑,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백운교, 극락전으로 오르는 연화·칠보교가 국보로 지정,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문화재는 당시 신라 사람들의 돌을 다루는 훌륭한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아울러 비로전에 모신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극락전에 모신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유산도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12월에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토함산< 吐含山 > 서남록< 西南麓 >에 자리잡은 이 불국사< 佛國寺 >는 신라< 新羅 > 경덕왕< 景德王 > 10년(751)에 당시 재상< 宰相 > 김대성< 金大城 >에 의해 기공< 起工 >되고 혜공왕< 惠恭王 > 10년(774)에 이르러 80여동의 목조건물< 木造建物 >이 들어선 대가람< 大伽藍 >으로 완성< 完成 >되어 신라< 新羅 > 호국불교< 護國佛敎 >의 도량< 道場 >으로서 법등< 法燈 >을 이어왔다. 조선< 朝鮮 > 선조< 宣祖 > 26년 (1593) 왜병< 倭兵 >의 침입< 侵入 > 방화< 放火 >로 650여년간 불국사< 佛國寺 >의 건물< 建物 >이 모두 불타 버렸다. 그후 대웅전< 大雄殿 > 등 일부< 一部 >의 건물< 建物 >이 다시 세워져 그 명맥< 命脈 >을 유지< 維持 >해 오다가 불국사< 佛國寺 >가 문화유산< 文化遺産 >으로 보존< 保存 > 전승< 傳承 >되고 나라를 사랑하는 호국정신< 護國精神 >을 기르는 도량< 道場 >으로서의 옛 모습을 되찾게 하고자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쳐 창건당시< 創建當時 >의 건물터< 建物址 >를 발굴< 發掘 > 조사< 調査 >하고 그 자리에 다시 세움으로써 현재< 現在 >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경내< 境內 >에는 통일신라시대< 統一新羅時代 >에 만들어진 다보탑< 多寶塔 >, 석가탑< 釋迦塔 >으로 불리는 3층석탑 < 三層石塔 >, 자하문< 紫霞門 >으로 오르는 청운교< 靑雲橋 > 백운교 < 白雲橋 >, 극락전< 極樂殿 >으로 오르는 연화교< 蓮華橋 > 칠보교 < 七寶橋 >가 국보< 國寶 >로 보존< 保存 >되어 당시< 當時 > 신라사람들의 돌을 이용< 利用 >한 예술품< 藝術品 >의 훌륭한 솜씨를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비로전< 毘盧殿 >에 모셔져 있는 금동비로자나불좌상< 金銅毘盧舍那佛坐像 >, 극락전< 極樂殿 >에 모셔져 있는 금동아미타여래좌상< 金銅阿彌陀如來坐像 > 등을 비롯한 수다한 문화유산들도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 佛敎文化 >를 되새기게 한다. |
기념으로 한장..
역광이라 내 실력으로 사진찍기가
참 힌들다..
빛이 마음에 들어 여러장 찍어봤는데
생각한 만큼 안 나왔다..ㅎㅎ
다보탑인데..
보수 수리중...
석가탑에서..
해가 많이 기울어졌다..
집에서 아침일찍 출발했는데..
대구에서 차가 많이 막혀 석굴암.다보탑
이두곳을 구경하고나니 해가 넘어간다..
자세히 구경한것 아닌데..
언제 올지 모르지만
고향이 김해라 내려올때 마다 한곳 두곳 천천히 돌아다닐까 한다..
너무 잘 알려진데라 구지 설명이 필요없을것 같아 사진만 올립니다..
이렇게 하여 여름여행 이야기 하루가 지나갑니다..
낼은 뱅기 타고 제주도로 휭~~~~
배낭과 항상 생활하실길...
치밭목 산장(조권식) 올림 치밭목산장 印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 여행 이야그 셋째날..( 제주도 둘째날편 ) (0) | 2009.08.14 |
---|---|
여름 여행 이야그 둘째날..( 제주도첫날편 ) (0) | 2009.08.12 |
** 7박 8일 동안 여름여행한 이야그... ** (0) | 2009.08.11 |
대한민국 반 바퀴 1박2일 여행중 보성대한다원편 (0) | 2009.06.21 |
대한민국 반 바퀴 1박2일 여행중 낙안읍성편. (0) | 2009.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