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3월 22일
목요일.
중국연수 셋째날..
세상구경하는것보다 새벽까지 이슬이와 사투하는것이 더 힘들다..
오늘은 조식후 천안문광장
자금성
만리장성을 구경하고나서
북경에 위치한 현대차 공장을 견학하는 일정이다..
오늘은 이 호텔에서 하루밤을 더 지내기때문에 짐 정리는 안해도 된다.
그 만큼 여유와 마음이 편하다,
오전에 현대공장을 견학하기로했는데 일정이 오전,오후 바뀌었다..
뭐 상관없다~~
어떻게 호텔주의가 헐헐벌판인 이곳을 찾아서 예약을했는지..
이곳도 아무것도 없다..
제발 시내주의에 방좀 잡아라~~
야경사진좀 찍게..ㅋㅋ
마음에 드는 방이다~~
북경이라 거리에서 이런모습보기가 힘들다..
천안문광장으로 가는길에..
뭐라고 했는데..
인도길인데..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량이많아 이렇게 강판을 깔아 인도길을 보호하고있다..
저 사람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다..
곳곳에 사복을 입고 다니는 공안이 많다..
이른 시간 참 사람많다..
ㅎㅎ
중국은 차도와 자전거가 다니는 길이 구분되어있다..
자전거 다니는길이 우리나라 차도여~~
이제부터 자금성 구경가자..
자금성은 우리나라 경복궁보다 늦게 지어진 곳이다
자금성(중국어: 紫禁城, 병음: zǐjìnchéng 쯔진청[*])은 베이징의 중심에 있는 명과 청 왕조의 궁궐이다. 자금성의 규모는 궁궐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이다. 현재는 1925년 10월 고궁 박물원(중국어: 故宮博物院, 병음: Gùgōng Bówùyùan)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1] 동서로 760m, 남북으로 960m, 72만 m²의 넓이에 높이 11m, 사방 4km의 담과 800채의 건물과 일명 9999 개의 방(실제로는 8707칸이라고 한다.)이 배치되어 있다.
1961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 1987년 "명·청 시대의 궁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곳의 중문인 오문의 가운데 문은 황제만 사용했으며 현재도 일반인의 출입을 엄금한다.
자금성의 정문을 천안문으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많으나, 자금성의 정문은 오문(午門)이며, 천안문은 황성 내성의 남문이다.
출처: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C%9E%90%EA%B8%88%EC%84%B1
명·청 500년을 통치한 24명 황제의 거처
'그는 또 수많은 뜰을 건너가야 한다. 그 많은 뜰을 다 지났다 해도 새로운 계단을 만나게 되고, 다시 뜰을 지나고 또 다시 다른 궁전을 만나게 된다. 끝없이 몇 백 년, 몇 천 년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황제가 파견한 사절은 결코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권력의 고독을 다룬 프란츠 카프카의 <황제의 메시지>에 나오는 ‘그곳’은 바로 쯔진청이다. 8백 여 개의 건축물과 9천 여 개의 방이 있는 곳. 10m에 이르는 높은 성벽과 50m 너비의 거대한 해자로 에워 싸인 그곳은 카프카의 말 그대로 드넓은 뜰과 수많은 건물로 지어져 빠져 나올 수 없는 미로다.
쯔진청은 명·청 때 500여 년간 24명의 황제가 살았던 궁전이다. 명나라의 3대 황제 영락제는 권좌에 오른 지 4년째 되던 1406년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기고 만리장성 이후 중국 최대의 역사라 불리는 쯔진청 쌓기에 나섰다. 이후 14년간 100만 명의 인부가 이 공사에 동원됐다. 사용된 건축 자재의 양도 상상을 초월해 벽돌 1억만 개와 기와 2억만 개가 사용됐다. 기둥에 쓰일 나무는 사천지방에서 조달된 것으로 운송에만 4년이 걸렸다. 전각의 받침대와 부조에 쓰인 돌은 50km 떨어진 채석장에서 날랐다. 돌은 하나의 무게가 200톤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 당시 부역자들은 겨울철 길에 물을 뿌려 빙판을 만든 뒤 돌들을 날랐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쯔진청에는 황제 일가를 위해서 9천 명의 시녀와 1천 명의 내시도 함께 살았다.
하늘의 아들, 황제를 위한 자색
쯔진청을 가득 메운 자색은 기쁨과 행복을 상징하는 빛깔이며, 동시에 우주의 중심인 북극성을 상징한다. 북극성은 하늘의 궁전이 있는 곳. 하늘의 아들 즉 천자인 황제가 사는 궁전 역시 그 하늘을 상징하는 자색으로 지었다. 남과 북의 긴 축 위에 놓인 쯔진청의 건축물들은 모두 남향이다. 이는 남쪽의 양기를 받고 북쪽의 바람과 음기로부터 황궁을 보호하려는 의도다.
성 내부는 정무 처리를 위한 구역(외조)과 황제의 주거 구역(내정)으로 크게 나뉜다. 남쪽에 있는 외조는 쯔진청의 정문인 오문에서 시작된다. 북쪽 방향으로 태화문·태화전·중화전·보화전이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그 동서에 문화전·무영전 등의 전각(殿閣)이 있다. 높이 35m, 면적 2377㎡의 웅장한 태화전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당나라 때에는 주요 의식이 치러지던 곳이다. 태화전의 앞마당에는 병사 9만 명이 모일 수 있는 넓은 뜰이 있다. 외조의 북쪽으로 내정이 펼쳐진다. 내정의 주요 건축물로는 건청궁·교태전·곤녕궁 등이 있다.
쯔진청은 철통 같은 보안으로 황제를 지켰다. 바닥에는 걸을 때 경쾌한 발소리를 내는 특별한 벽돌이 갈려 있다. 이 벽돌의 효과는 음향만은 아니었다. 땅 밑에서 뚫고 올라올지 모를 침입자를 막기 위해 40여 장의 벽돌을 겹쳐 쌓았다. 성 내에는 후원을 제외하고는 나무가 전혀 없다. 암살자가 나무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자의 거처지만 어쩌면 금으로 둘러 싸인 감옥이었는지도 모른다.
쯔진청은 1949년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뒤에야 비로소 일반에 공개됐다. 과거의 궁전이라는 뜻에서 공식 명칭은 ‘고궁’이 되었다. 왕조는 사라졌지만 해마다 600~8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쯔진청은 여전히 중국 문화의 중심으로 위용을 떨치고 있다.
자금성 경비원 같어~~
이제 부터 설명못한다..
알아서 봐야한다..ㅋㅋ
너무 어두워 확~~~올리고 찍었다..
번쩍하죠~~
금이라고..
돌 아니 바위하나을 통으로 가져와 만들었다고..
참 담 높다..
침략을 막기위해 ..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데..
북경관광온 한국사람은 다 모이는것 같다..
저 버스들 한국손님차량이다.
만리장성..
다른것은 모르겠고 만리장성을 곳 보고싶고 걷고싶었다..
그런데
오랜시간 걷지는 못했다..
너무 아쉽다..
상해. 염성. 북경에서는 산을 구경못했다..
한글이 있다는것은 그만큼 많이 온다는것..
동남아시아인것은데..
같이 온 일행들을 카메라을 받아 일일이 한장씩 다 찍고있다..
만리장성 [萬里長城, Great Wall of China]
북쪽의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위해 진나라 시황제가 증축하면서 쌓은 산성이며 명나라 때 몽골의 침입을 막기위해 대대적으로 확장하였다.
2000여 년 역사, 시대에 따른 변화
만리장성이 현재 위치에 처음 축성된 것은 6세기 북제(北齊) 시대이다. 처음 건축될 무렵의 길이는 산시성[山西省] 리스 현부터 보하이만[渤海灣]까지 약 1,500㎞였다. 이후 명(明)나라 때 총 길이 2,700㎞에 이르는 현재의 규모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명 나라는 15세기~16세기에 만리장성에 대한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을 진행했는데, 당시 북방에 있던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북방민족인 만주족이 세운 청(淸) 왕조에서는 군사적 가치가 없어 방치되어 있다가, 중화인민공화국 때 관광 목적으로 보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만리장성 2,700㎞가 똑같은 구조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중으로 축성된 곳도 있고, 성벽의 높이나 폭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체로 서쪽보다는 동쪽이 견고하게 축성되어 있다. 성을 쌓은 재료는 햇볕에 말린 벽돌과 이것을 불에 구운 전(塼), 그리고 돌 등인데 동쪽으로 갈수록 더 단단한 재료를 사용했다. 성벽은 높이 6∼9m, 평균 폭은 위쪽 4.5m, 아래쪽 9m이다. 100여 m 간격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군사적 방어선이자 문화적 경계
중국 역대 왕조들이 만리장성을 쌓은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왕조의 성격에 따라 만리장성의 중요성이나 만리장성에 쏟는 정성도 달라졌다. 왕조가 공격적이었던 시기보다는 방어적이었던 시대에 만리장성은 더욱 중시되었다. 북방 경영에 열심이었던 당나라 때나 전 세계를 무대로 침략전쟁을 벌였던 몽고제국과 뒤이은 원나라, 만주에서 일어나서 만리장성 너머까지 다스렸던 청나라 때는 그 중요성이 크게 떨어지고, 따라서 개보수 작업도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만리장성은 군사적인 역할 이외에 문화적으로는 유목문화와 농경문화, 중원과 변방을 가르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다. 중국 역대 왕조들이 만리장성에 들인 노력과 비용에 비해서 방어벽으로서 역할은 크지 않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실효성에 관계없이 오늘날 만리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녀갔으면..
현대자동차 북경공장 견학후..
돈좀 있다고하는 사람이 오는것같어~~
맛은 좋아~~
마지막 일정이라고 회사에서 이슬이을 풀었다..
한테이블에 이슬이 2병..
간에 기별도 안가는양..
더 주문하려고하는데
팀장이 좀더 확~~푼다..
밖에 나간사람도 있는데..
한박자 늦었다..
뭐 고기하고 이슬이하고 좀더 먹고 나간다..ㅎㅎ
인간들 밥을 너무 빨리 먹는데..
호텔가면 할일도 없으면서..
화장실에 붙어있었다..
이슬이 좀 먹었네..ㅎㅎ
우리나라 연예인 사진도있고..
K7 중국쪽으로 몇대 수출안하는 차량인데..
이곳에서 ...
중국은 아직까지 대형차들이 진출하기에 힘들다..
그런데 누가 완성차을 수입해서 타고 다니는지..
이렇게 북경에 밤은 흘려가고
내일 아침이면 집으로간다..
정말 아무사고없이 일정대로 진행되어 넘 기분이 좋다..
다시 느끼는것인데..
중국.
알면 알수록 무서운 나라이다..
야경을 못 찍어 너무쉽다..
트래킹과 관광..
둘다 힘들지만
그래도 트래킹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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