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1월 31일..
새해가 바뀌고..
벌써 1월달도 지나간다..
마지막날.
올해는 작년에 비해서 일을 좀 하는것갔다...
작년에는 공무원생활.즉 5시반에 칼퇴근했는데..
올해는 잔업도 좀 하고 휴일에 회사출근을 간간이 한다..
한참 일할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어떻게 일을 했는지..
한달내내 주.야 출근을 했는데..
지난주 일욜부터 야간근무을 시작하여 오늘 일욜 아침까지 일을 하고 퇴근..
이렇게 일한것도 일년만에 하는것 갔다.
오전에 잠을 청하고 오후에 등 달아놓은 등이보고싶어 애들을 데리고 서운산 청룡사로간다..
바람은 좀 차지만 날씨가 많이 풀렸다.
애들 옷도 많이 가벼워졌고..
모처럼에 절을 찾아 절도하고 이것저것 구경도한다..
나야 할일없으면 서운산쪽으로 산행겸 절에 다녀오지만
애들은 초파일날오고 처음오는것갔다..
이제는 절도 잘한다..
짧은 나들이시간이였지만 애들은 그 시간동안 잼 나게 놀았는지..
아무소리 없이 집으로향한다..
전에 가지고있던 카메라 렌즈을 팔고 새로 산 렌즈로 이번에 애들 사진을 찍어봤는데..
아직 적응은 안되지만 마음에 든다..
뭐 가족 일기라 볼것은없다..
지나간 시간들...
** 청룡사...
1265년(고려 원종 6) 서운산 기슭에 명본국사(明本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대장암(大藏庵)이라 하였으나 1364년(공민왕 13) 나옹화상이 크게 중창하고 청룡사로 고쳐 불렀다.
청룡사라는 이름은 나옹화상이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절 안에는 대웅전(보물 824), 관음전, 관음청향각, 명부전 등이 있고, 대웅전 앞에는 명본국사가 세웠다는 삼층석탑 등이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은 다포계의 팔작집으로 고려말 공민왕 때에 크게 중창하여 고려시대 건축의 원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다.
법당 안에는 1674년(조선 현종 15)에 만든 5톤 청동종이 있고, 큰 괘불이 있어 대웅전 앞에 괘불을 걸 돌지주까지 마련해 놓았다. 구불구불한 아름드리 나무를 껍질만 벗긴 채 본래의 나무결 그대로 살려 기둥으로 세웠다.
인평대군(麟平大君)의 원찰(願刹)이었다는 청룡사는 1900년대부터 등장한 남사당패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이들은 청룡사에서 겨울을 지낸 뒤 봄부터 가을까지 청룡사에서 준 신표를 들고 안성장터를 비롯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연희를 팔며 생활했다. 지금도 건너편에는 남사당마을이 남아 있다.
주변에 서운산, 칠장산, 미리내성지, 고삼저수지, 안성장, 삼일운동기념탑, 죽주산성 등의 관광지가 있다.
http://www.buddhahouse.com/ --한번 콕 해봐라
살아가는데 도움된다
찾아가는길..
이 지도을보면 좀 헤갈린다..
요즘 좋은 네비찍고가면 카메라 안찍히고 기름아끼고..
생각없이 아가씨가 가자는데로가면 서운산 청룡사에 도착한다..
좋은세상이다..^^
없던 돌탑이 입구양쪽에 만들어져있다..
시간이 많이 흘려갔구나..
대웅전 앞마당에서..
초점이 잘 안맞는다..
적응이 안되서 그런가..
렌즈는 괜찮다고 했는데..
뭐 오늘이 처음이라..
잘 논다..
시간만 좀더 있었으면 서운산도 한번 올라가 보는건데..
유진이...
이곳에서 한참 놀았다..
뭘 할까요???
한참 잘놀고있는데..
절에 있던 개가 지나가면서 몇번 찢어대니 애들이 겁이나 엄마뒤에 그냥 서있다..
뭐 그렇게 기대하거나 볼거리는 없다..
입에 뭐가 들어가야 잠시 조용하다..
먹고 살려고.
고생이 많다..
덩달아 하나 얻어먹고..
** 청룡사삼층석탑 (靑龍寺三層石塔)
네모난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4장의 판돌을 세워 4면을 이루게 한 뒤, 판돌을 얹어 마무리하였는데,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몸돌과 지붕돌이 교대로 올려진 탑신부는 몸돌의 모서리에 기단에서와 같은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다. 몸돌의 크기는 2층에서부터 급격히 줄어들었는데 이로 인해 전체에 흐르던 비례감이 약간 흐트러지고 있다. 급한 경사를 이루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위로 들려 가벼움을 실었으며, 윗면의 네 모서리선이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기단과 지붕돌 모서리의 일부가 깨져 나가고,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없어지긴 하였으나,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있는 탑으로, 고려시대의 석탑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안성청룡사동종 (安城靑龍寺銅鍾)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와 소리의 울림을 도와준다는 대나무 모양의 음통에 역동적인 모습의 용이 새겨져 있다. 또한 종의 어깨와 아래 입구 부분에는 연꽃과 덩굴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으며, 어깨 띠 아래에는 사각형 모양의 대가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보살상을 세웠다.
또한, 검은빛이 감도는 큰 종으로서 원래는 1674년에 종루의 종으로 만든 것이다. 현재도 매일 행해지는 예불의식 때마다 종을 치고 있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종의 모양을 보면 소리를 좌우하는 음통(音筒)이 맨 위에 있고 그 옆에는 용 모양의 종을 거는 고리(용뉴)가 있다. 그 아래에 배가 불록한 포탄 모양의 종이 있다.
종신의 표면을 보면 위쪽에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과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을 1줄씩 새기고 그 아래 사다리꼴로된 4개의 유곽(乳廓)이 있고 그 사이에는 연꽃 가지를 든 4구의 보살입상과 4개의 위패(位牌)가 한 쌍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같은 구성법은 17세기 전반기에 정통 승장계(僧匠系)장인들이 주로 썼던 방식이다. 이 종은 숙종 대에 활동했던 승장 사인(思印)이 30대 중반에 지준(智俊)·태행(太行)·도겸(道兼)·담연(淡衍)·청윤(淸允)과 함께 만든 통일신라 때부터 보이는 전통 계열의 종이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 후기 종들 가운데서도 우수한 작품으로 17세기 범종의 연구와 승장들의 사회 및 사원경제구조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 유곽 : 종의 윗부분에 붙어 있는 사각형의 무늬부분으로 유두(乳頭)를 둘러싸고 있다.
안성청룡사동종 (安城靑龍寺銅鍾)
나무생김새 그대로..
그래도 잘 벗티고있다..
지난 번 홀로 서운산왔다..
절하고 등을 찾았보았는데..
도저히 찾을수가 없어 그냥왔는데..
이번에 등번호을 알려고 사무실에 들어간뒤 모습..
**청룡사대웅전 (靑龍寺大雄殿)
절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건물로 추측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재료 윗몸에 연꽃과 연꽃봉오리를 화려하게 조각해 놓아 장식이 많이 섞인 조선 후기의 특징을 보인다. 기둥은 전혀 가공하지 않은 원목을 그대로 세운 것이 눈길을 끈다. 건물의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천장으로 꾸몄다.
이 대웅전은 안쪽에 조선 헌종 15년(1674)에 만든 범종을 보관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의 건축 기법과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아25...
유진이..
지훈이..
저 목련꽃이 활짝피면 다시 오리라..
기다림이 있다는것..
찾아갈곳이 있다는것..
함께하는 이가 있다는것..
보고픈 님이 있다는것..
그 어느것 하나 버릴것이 있는가..
그냥 이대로...
배낭과 항상 생활하실길...
치밭목 산장(조권식) 올림 치밭목산장 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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