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이야기

세상 구경하는날...

지리산.. 2010. 8. 13. 02:59

 

2010년 08월 04일...

다섯째날 여정...

 

 이제 ...

중요한 보그다 트래킹은 아무사고없이 잘~~~마무리되였다..^^

 

오늘부터는 또 다른 세상을 내눈으로 보는날..

연 몇 일을 자정을 넘기는 일정으로 피곤도 하지만 하루하루 색다른 세상이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니

십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여행이란것은 이렇게 피곤하고 힘들어도 즐기면서 여행을 한다면

조금을 불편이 나중에는 따따불로 돌아오니

어찌 여행이 즐겁지 않겠는가..

팀원이 대방 좋은니 고생도 행복하다..^^

 

오늘부터는 버스안에서  인내심 싸움이다..

 

영향가 없는 긴글은 이만 줄이고 세상속으로...

 

투루판 고~~~~~~...

 

 오늘 일정은 대충이렇다.

 

 **우루무치출발(07:40)->풍력발전소 전망대->교하고성->커얼츠(카레즈)->소공탑->포도농장->아스타나고분->

     베제클릭천불동->화염산->샨샨마을->쿠무다거사막(20:30)

 

 

 

 

화염산에서..

나..

 

 

 

 

보그다 산행후 다시 우루무치로 돌아와 전날 같은호텔

다른 층수 방에서 본 시내아침풍경..

 

좀 높은데 자니 세상도 잘 보인다..

그래서 인간들이 높은 곳만 찾아서 올라가는갑다..^^

 

 

 

 

 

 

세계에서 두번째로큰 풍력발전소..

 

 

 

 

 

인상하고는 ..

여기도 악어와 악어새 관계..

 

 

 

 

 

 

 

 

가다가 어딘지 모르겠다..

 

 

 

투루판으로 고~~~고싱..

 

 

투루판 (중국 도시)  [吐魯番, Turfan Depression]

 

(병)Tulupan (웨)T'ulupa'n (관)Turfan.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우루무치[烏魯木齊] 남동부의 도시.
 
투루판 분지 북부에 있는 비옥한 오아시스의 중심부이며, 훠옌 산[火焰山] 남쪽 기슭에 있다. 북쪽으로는 해발 4,000~5,000m의 보거둬 산맥[博格多山脈]이 있는데, 이 산맥의 높은 봉우리들에는 1년 내내 눈이 쌓여 있다. 이 산맥은 분지의 주요수원(水源)이다. 남쪽으로는 해발 1,500m가 넘는 줴뤄타거 산[覺羅塔格山]이 있다. 분지 중앙의 지면은 대부분 바다 수면보다도 낮으며, 그중 아이딩 호[艾丁湖]의 수면은 154m로 세계에서 유명한 저지대이다. 투루판은 톈산 산[天山] 남북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로, 실크 로드 북쪽의 중요한 중간기착지이자, 북쪽으로 우루무치를 지나 중앙 아시아를 통과하는 분기점이다. 한대(BC 206~AD 220) 차사왕국(車師王國)은 지금의 투루판 현 북서쪽 5km에 있는 교하성(交河城)에 수도를 정했다. 450년 고창국(高昌國)이 이곳을 합병하고, 수도를 고창성(지금의 투루판 남동쪽)으로 정했다. 640년 당나라가 고창을 평정하고 서주(西州)를 설치했다. 8세기 후반 토번(吐蕃)의 땅이 되었다. 9세기에 위구르족들이 옮겨와 살았다. 이들을 역사상 '고창회골'이라고 한다. 원대(1279~1368)에는 화주(和州 : 火州)라고 불렀다. 청나라 때인 1759년(乾隆 24) 이곳에 투루판 청(廳)을 두었다. 1882년 상업도시로 개항되었으며, 1912년에는 투루판 현이 되었다. 투루판의 기후는 매우 무더우며, 지하에 구멍을 내서 만든 감아정(坎兒井 :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관개시설)으로 물을 댄다. 과거에는 양식작물 재배를 주업으로 했다. 1954~55년 이후에는 목화 재배가 발달했으며, 지금은 면화 생산을 위주로 하는 경작작물 지역이 되었다. 투루판산(産) 과일은 국내외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서북철도(西北鐵道)의 간선인 란저우[蘭州]-우루무치를 연결하는 란신 철도[蘭新鐵道]와 새로 건설된 투루판-쿠얼러[庫爾勒]를 연결하는 난장 철도[南疆鐵道]가 이곳에서 합류한다. 투루판의 명승고적으로는 훠옌 산, 아이딩 호, 한대 교하성(交河城)의 옛 터, 한대 고창성의 옛 터 및 남북조시대에 건설된 바이쯔커리커[柏孜克里克] 천불동(千佛洞) 등이 있다. 인구 209,100(1987).

 
 **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톈산산맥[] 동쪽에 있는 도시.
        위치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톈산산맥 동쪽
         경위도 동경89°11′ 북위42°59′
       면적 69324㎢
          행정구분 1시 2현
        시간대 UTC+8
        소재지 588
         홈페이지 http://www.turpan.gov.cn
     인구 570,000 명(2003년 기준)
       인구밀도 8 명/㎢(2003년 기준)
 
또는 이 도시를 중심으로 한 분지 전체를 통틀어 투르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명은 15, 16세기에 이 분지에서 세력을 떨쳤던 투르판국()과 그 도성()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북서쪽은 우루무치, 남서쪽은 카슈가르, 남동쪽은 간쑤성[]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발전하였다. 또 이 도시의 북서쪽에 있는 야르호토는 한대()의 사서()에 차사국()이라고 기록된 교하성()이고, 남서쪽의 카라호토는 고창국()의 수도였던 고창성()이다. 그 때문에 청대() 이전까지는 분지 전체를 고창 또는 호토라고 불렀다. 이곳은 또한 해수면보다 280m 낮은 지점에 해당하므로 ‘아시아의 우물’이라고 일컬을 만큼 지리학상으로도 유명하다.

최근 중국에서 톈산지구[]로 통하는 철도가 신설되어 투루판은 이 철도의 주요역()이 되었다. 부근에서는 목화·포도 등이 많이 나고, 여러 시대에 걸친 도성유적을 비롯하여 고분군() 등의 사적이 많다.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투루판 지도]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에서 참고..
 
  *** 

중국 천산 산맥(5445m) 중턱의 해발 2000m의 호수 천지가 있는 우루무치를 떠나 세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투루판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동쪽에 중국에서 가장 낮은 지역인 투루판이 있답니다.

투루판은 연간 최고 기온이 50도가 넘어가고 지표의 온도는 무려 70도나 되는 중국에서 가장 더운곳이랍니다. 그러다가도 사막기후이기에 해가지면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가장 더운 투루판에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지만 에어컨이 설치된 곳은 겨우 외국인들이 머무는 호텔뿐이고 현지인들은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50도의 더위를 이겨내며 잘 살고 있는데 이들이 더위를 이겨내는 비법은 더우면 그냥 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더우면 땀이 나고 땀이 증발하면서 체온을 떨어뜨리는 우리몸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별 불편함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뜨거운 이곳의 날씨는 삶의 불편함 대신 큰 혜택을 주기도 하는데 일조량이 많고 뜨거운 날씨는 다른 어느곳보다 당도높은 포도의 생산을 가능케 하여 포도가 이곳에서는 매우 유명하답니다. 그래서 투루판 시내 중앙공원 입구에는 포도소녀상도 있고 중심가에는 포도나무를 가로수로 심어져 있답니다.

투루판의 주변 관광지중에 손오공주연의 서유기에 보면 손오공이 '파초선'을 빌려와 화염산의 불을 끄고 서역으로 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그 화염산도 여기에 있는데 이 화염산은 100km나 되고 폭이 10km나 되는 거대한 산이지만 높이는 최고 851m에 불과 하다고 합니다.

1777년 투루판의 군왕(郡王)이었던 어민 호자(Emin Hoja)가 자기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높이 44m의 미나렛(첨탑)으로 흔히 사막의 등대로도 이용되는 소공탑 사진도 있는데 벽돌로 된 탑 외면에는 15가지의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모두 위글족의 전통적인 무늬입니다.

재밌는것은 200여년전 투루판에는 시멘트나 철강이 없었기에 벽돌을 쌓을때 흙 80%, 계란, 꿀, 찹쌀 20%를 혼합해 시멘트용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만든 건물이 20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아무런 문제도 없답니다.

 

 

 

 

 

 

 

 

교하고성..

 

 

 **  자오허고성 [ (교하고성), Jiao he gu cheng]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투루판[]에 위치한 고성().

      투루판[] 시가지에서 서쪽으로 13㎞ 떨어진 야얼나이쯔거우[沟]에 있는 베틀 북 형태의 높이 20m의 섬 위에 있다. 성벽이 없는 형태의 고성으로 여러 가지 도시 유적이 발견되었다. 진한(汉)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차사전국왕정(车师)의 소재지였다. 불교를 신봉하는 차사인(车师)들이 이곳에 거주하였고 현재까지도 52곳의 불교 건축 유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불교가 부흥했던 장소임을 알 수 있다.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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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고성(交河古城)-고창(高昌) 도성의 유적이다. 오늘날 신강 투르판 서쪽 지역10㎞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성은 두 개의 하류가 만나는 벼랑에 위치했기 때문에 교하(交河)라고 명명하였다. 벼랑의 길이는 1,650m 폭이 가장 넓은 곳은 대략 300m 정도이고 주위는 깊이가 30m인 하곡(河谷)으로 둘러쌓여 있어 성벽이 없다.

유적은 절벽의 가운데 지역 남쪽 1㎞지역 범위내에 집중되어 있다. 성문, 거리, 사원, 민가, 요지, 고정(古井) 등의 유적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3,000년 전 강 중심 지역에는 사람이 사는 민가가 있었다.

전한 원봉2년(B.C.109)에서 북위 태평진군 11년(450)의 시기에는 거사전왕(車師前王)의 지배를 받았다. 고창왕국은 이 지역에 교하군을 설하였으며 당은 서주(西州) 교하현을 설치하였다. 안서도호의 치소를 두어 서역의 군정 사무를 관장하였다.

정원(貞元)시기에 토번(土蕃)에게 함락당하였으며 후에 회골이 고창국 교하주를 설치하였다. 대략 송·원초 시기에 전란으로 함락되어, 현재의 유적은 주로 고창 이후의 유적이다.

 

 

 

 

이렇타~~~~

 

 

 

 

 

 

 

 구지 설명 안해도 되지요..^^

궁금하면 찾아보고..

 

 

 

 

 

지정된 장소..

지정된 길...

외에 들어가거나

사진 촬영하면 책임 못짐..

ㅎㅎ

 

 

 

 

 

 

 

 

 

 

 

 

 

 

 

 

 

 

 

 

 

 

 

 

 

 

 

 

 

 

 

 

 

 

 

 

 

뭔지 가이드도 설명안했음..

햇살 장난이 아니니

설명도 그늘에서...

 

 

 

 

 

 

 

 

 

 

 

 

 

정해진 코스와 길..

 

 

 

 

 

 

 

 

태양 바로 밑에서..

 

 

 

 

 

 

 

 

 

 

 

 

 

 

 

 

함께한 트래킹 인간들..

 

 

 

 

 

 

 

 

 

 

나도 한장..

 

 

 

 

 

 

 

 

 

 

 

 

 

 

 

 

 

 

 

 

 

 

나..

 

 

 

 

 

수박 맛있다..

 

더워서~~~

 

 

 

 

 

 

 

 

 

 

카나트

[카레즈, 칸얼징]..

 

카나트...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카나트의 구조

중국의 고대 수로로 투르판과 같은 고온 건조한 지역에 나타난다. 연간 내리는 강수량은 부족하고 물은 필요하기 때문에 증발을 막는 구조로 형성한다. 즉, 수로를 지하에 건설하여 증발을 최대한 막는 것이다. 이란에서는 카나트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까지 이른다.

 

어원

카나트는 페르시아어인 카나트(qanāt)에서 유래되었고, '카나트'라고 발음을 하며, 파슈토어 지역의 아랍어로는 '카레즈'라고 발음을 한다. 카나트는 여러 지역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려왔다. 이란에서는 '카나트'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는 '카레즈'로 중국에서는 카레즈를 한자 음역하여, '칸얼칭'이라고 발음한다. 요르단과 시리아 지역은 '카나트 로마니'라고 하며, 모로코에서는 '케타라', 스페인에서는 '갈레리아', 아랍에미리트와 오만 지역에서는 '팔라즈', 볼로냐에서는 '칸'이라고 발음을 한다. 프랑스의 번역인 '포가라'는 아랍의 카나트를 번역한 것이며, 북아프리카에서는 어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

카나트 [Qanat]

 

건조지대에서 지하수를 이용한 관개수로를 가리킨다. 고대 이란에서 처음 발명된 것으로 추정되며, 부근에 존재하는 산지의 산기슭에 형성된 선상지에 복류()하는, 이제 막 산간()을 흘러내려온 담수를 취수한다.

 

서남아시아북아프리카 등의 건조지대에서 볼 수 있는 지하수 관개수로()의 한 가지이다. 고대 이란에서 처음 발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조지대 중에서도 산지에서 떨어진 평탄한 지대에서는 생활·농업생산의 기초가 되는 담수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또한 이런 지대에 있는 지하수는 오랫동안 땅 속에 고여 있어 흙 속의 염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집락을 유지하고 농업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담수를 구해야만 한다.

카나트는 부근에 존재하는 산지의 산기슭에 형성된 선상지에 복류()하는, 이제 막 산간()을 흘러내려온 담수를 취수한다. 그 원점은 선상지의 맨 꼭대기 부분에 파놓은 샘인데, 복류하던 물이 이 샘의 밑바닥으로 솟아나온다. 이 물은 집락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증발로 손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지하수로를 통해 송수된다. 지하수로를 흘러온 물은 여기서 지상으로 나와 이용된다.

지하수로의 길이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긴 것은 4∼50㎞에 이르는 것도 있다. 카나트를 파는 것은 특수한 기술을 요하는 일이어서, 기술자들은 일종의 길드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카나트를 파고, 이것을 관리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카나트의 공사와 유지는 지주 계급의 출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카나트 및 카나트를 통해서 얻은 물의 소유권은 대부분 지주에게 속해 있다.

카나트라는 명칭은 이란에서만 사용된다. 이런 장치를 아프카니스탄에서는 카레즈(Karez), 시리아·북아프리카에서는 호가라(Foggara)라고 부른다.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 실생활의 카나트 ##

[편집] 아시아

[편집] 아프가니스탄

다리에서는 현지어로 카리즈라고 부르며, 수백 년을 사용해 왔다. 카리즈의 구조는 남부의 칸다하르, 우루즈간, 님로즈, 힐만드 등지에서 발견된다. 지난 30년간 끊임없는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고대유적들이 파괴되었다. 2009년 현재까지도 벌어지는 전투 때문에 인건비가 상승하여 카리즈를 유지보수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또한 전통 기술자들의 부족으로 더욱 어려움에 처해있다. 많은 농부들이 그들이 수백 년간 사용해 오던 카리즈를 포기하고, 이제는 디젤 펌프로 물을 길어올린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이러한 구조물에 대한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수리와 재건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편집] 이란

약 이란의 고원지역 4/5 정도가 이러한 방식을 물을 공급받는다. 그러나 이란에서도 농업이 점점 중요성이 떨어져 가면서, 지금 만들어져 있는 카나트는 옛날에 만들어진 카나트보다 훨씬 효율이 떨어진다. 카나트를 만드는 노하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카나트의 건설과 유지는 힘들고, 위험하기 조차하다. 현대의 기술력은 지하를 뚫어 우물을 파는 방식이므로 그 장점이 많이 퇴색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나트는 여전히 존재하며, 중요성이 점점 떨어져갈 뿐이다.

가장 오래되고 잘 알려진 규모가 큰 카나트는 아란의 도시 고나바드에 있다. 2700년이 지난 지금도 4만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농업용수와 식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주요 우물은 깊이가 360m 이상이며, 그 길이만 해도 45km에 이른다. 야즈드 시, 코락산 시, 케르만 시가 카나의 사용으로 가장 잘 알려진 지역이다.

[편집] 파키스탄

북서쪽의 발로치스탄과 파키스탄과 가까운 차가이 지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란과 접경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도 카레즈를 널리 볼 수 있다. 카레즈는 차가이 지구에서 길을 따라 북쪽으로 조브 지구에까지 펼쳐져 있다.

[편집] 인디아

인디아의 카나타카에는 수랑가라고 불리는 지하로 물을 대는 카나트 구조의 관계수로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편집] 중국

투루판 카레즈 물박물관의 모형
지하에 건설된 카레즈, 투루판

중국의 북서쪽 사막에 위치한 투루판의 오아시스는 카나트에서 공급하는 물을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투루판은 오래된 비옥한 오아시스의 중심지였으며, 실크로드 북로에 위치한 중요한 무역도시였으며, 당시에도 남서쪽으로 쿠얼러카라사르 왕국에서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더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카레즈 시스템의 첫 사료의 기록은 한나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투루판의 물박물관은 그 지역 관계 시스템의 역사적 중요함 때문에 중국의 보호구역이 되었다. 이 지역에서 카레즈 관계 시스템의 수는 1,000에 육박하며, 전체 길이는 5,000km에 이르는 엄청난 대공사였다.

***

삼대가 공사에 동원되었다고한다...

 

 

 

 

 

 

 

 

 

 

어떻게 공사했는지..

가이드는 먹고살기위해 목청것 야그한다..

 

 

 

 

 

 

 

 

지하로 이동중..

 

 

 

 

 

 

 

사용된 기구들..

 

 

 

 

공사현장을 모형한것..

이렇게 엎드려서 공사..

 

 

 

 

 

먹고사는곳..

장사하는곳..

 

 

 

 

  잘~~~읽어보시고..

좀 카메라가 흔들려도 글씨는 알수있겠죠..

 

 

 

 

 

밖으로 나와..

덥다..~~~~

 

 

 

 

 

 

 

 

점심 양꼬치..

 

 

 

 

 

 

 

 

 

 

 

양꼬치..

 

 

 

 

 

어디게..

 

 

 

 

소공탑..

 

 

소공탑(중국어: 苏公塔/ 额敏塔, 병음: Sūgōng Tǎ/ É'mǐn Tǎ)

 

신장 위구르 자치구투르판에 세워진 위구르 모스크(이슬람 사원)이다. ‘소공탑’ 또는 ‘에민탑’, 또는 현지어로 ‘에민 미나레’라고 부른다.

높이 44m 로, 중국에 있는 미나레(이슬람식 탑) 중 가장 높은 탑이다. 청나라는 1750년대 이슬람 지역에 있는 몽골과 위구르에 대한 대대적인 정벌 전쟁을 벌인다. 정복자로서 청나라는 이 지역 사람들과 이슬람 종교에 대한 너그러운 통치 정책을 시행한다.

이 소공탑은 청나라 건륭제 년간(1735–1796)인 1777년 시작되어, 1년 만에 완성된 탑이다. 이 지방 호족에 재정지정을 받아, 이 지역의 투르판 장군이었던 에민호자를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으므로 탑의 이름도 “에민”이라고 지었다. 소공탑은 고대 실크로드 중 고대 위구르 가오창의 수도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며, 베제클리크 천불동과도 가까운 위치에 있다.

남쪽 신장지역의 건조한 생태는 실크로드와 같은 역사적인 무역로를 통해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오랫동안 연결해 왔고, 이 교차로 주변 지역의 땅은 신장에서 위구르 이슬람 건축물이 세워지는 지역이 되었다.

이 지역은 이민족과 다른 종교 집단 사이에 문화교류의 장으로 오랫동안 역할을 해왔다. 소공탑은 다른 위구르 모스크와 미나레(이슬람식탑)와 같이 이슬람 전통 양식과 토속의 위구르 전통 건축 양식의 결합을 반영한다.

 

 

 

 

 

 

 

 

 

 

 

 

 

 

 

 

 

 

 

 

 

 

 

 

 

 

 

 

 

 

 

 

 

 

 

 

 

 

 

 

 

 

 

 

 

 

 

 

 

 

 

 

 

 

 

 

 

 

 

 

 

 

 

 

 

 

 

 

 

 

 

 

 

 

 

 

 

 

 

 

 

 

 

 

 

 

 

 

 

 

 

 

이곳에서 박수을 치면 울린다..

참 신기하고 대단한 기술력이다..

 

 

 

 

 

 

 

 

 

 

 

포도길..

 

 

 

 

 

 

 

 

 

 

 

 

 

 

 

 

 

 

 

 

 

포도집 아이..

카메라을 들이대니 자연스럽게 포즈을 잡는다..

 

그만큼 한국사람들이 많이 온다는것..

 

 

 

 

 

 

 

 

 

 

 

 

 

 

춤을 추는데

넘 좋았어..

 

 

 

 

 

 

 

 

 

 

 

 

 

 

 

건포도..

종류따라 맛도 틀린다..

 

 

 

 

 

 

 

 

 

 

아스타나고분..

 

 

 **  아스타나고분 [Astana]

중국 6조()에서 수() ·당() 시대에 이루어진 신장웨이우얼[]자치구 투루판[] 분지에 있는 고창국()의 묘지().

 

투루판 분지는 5∼7세기에 번영한 곳으로 아스타나는 이곳의 북서쪽에 있다. 영국의 M.A.스타인 탐험대가 1914년 발굴조사한 결과 ① 6조 중기, ② 고창국이 번영할 때, ③ 당나라 통치시대의 3시기에 이루어졌음이 판명되었다.

지하에서 발굴한 널방[]에서는 묵서(묘지명()·토우(견직물을 비롯하여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화폐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동서 교섭사상 중요한 요지였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50년에는 중국학자들이 재조사한 묘지·견직물 등에서도 고창국의 문서가 발견되었다.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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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훠쭤(哈拉和卓) 고분군-당대 서주(西州)에 위치한 묘지이다. 오늘날 신강 투르판 동남 약 40㎞에 위치하며 고창고성 동북쪽에서 성의 서북 지역에 이르며 동서는 약 5㎞, 남북의 넓이는 약 2㎞ 정도이다. 묘군은 두 개로 구분되는데 하라훠쭤 마을 동쪽은 하라훠쭤 무덤군이고, 마을의 서남 방향은 아스타나 무덤군이다. 아스타나는 고대 위구르 언어로는 정치의 중심지라는 의미이다. 하라훠쭤는 고대 위구르족 대장의 이름이다. 20세기 초 무덤군은 러시아, 독일, 영국, 일본 등 당시 제국주의 들에게 도굴을 당해 상당 수의 문불들이 해외로 유출되었다. 1949년 이해 몇 차례의 발굴을 통해 무덤 400여 개를 정리하였다. 가장 시기가 이른 무덤은 서진(西晋) 태시(泰始) 9년(273), 가장 시기가 늦은 것은 당 건중(建中) 3년(782) 이 곳으로 옮겨 매장된 북정(北庭) 부도호 고요(高耀)이다. 무덤은 대부분 일부일처의 합장묘이며 혹은 1남2녀 혹은 3녀의 묘가 있으며 드물게는 단인장묘도 있다. 형제(形制0는 주로 완만한 계단 묘도인 동굴묘이고, 이른 시기의 것으로는 수혈편실(竪穴偏室) 묘도 있다. 시체의 대부분은 풀위에 안치되어 있으며 목관 혹은 종이관 등도 보인다. 가족장이 유행이었다. 이곳의 피장자는 16국 북량시기의 장군이나 평민들이지만, 고창왕릉의 묘는 발굴되지 않았다. 출토된 문자는 거의 대부분 한자이지만 적지 않은 소수민족의 인명이 보인다. 출토된 13개의 작은 목패(木牌) 가운데, 정면에 붉은 글씨로 "대인(代人)"이라 적혀있고 뒷면에는 소그트 문자로서 한자와 돌궐어가 쓰여져 있다. 이것은 묘주인은 한족으로 거사(車師), 흉노(匈奴), 돌궐(突厥), 소무구성(昭武九姓) 등 소수민족과 같이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출토문자 정리 후, 2천 여 자를 해독할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외에도 비단, 묘지(墓志), 전폐, 면(棉)·마(麻) 모직물 등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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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타나고분]-아스타나(위구르 언어로 "휴식"을 뜻함) 
기원전 4~7세기 고창국 시기부터 8세기 당나라때까지 사용되었던 고창국 주민들의 공동묘지로
군사나 흉노 등의 귀족과 고급 관리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약 500여 개의 묘가 모여 있다.
고창국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대량의 유물, 벽화, 미이라가 출토되었으나,
투루판 박물관이나 우루무치의 신강 위그루 자치구박물관으로 모든 유물이 이전되어
현재는 그냥 분묘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참고로 "아스타나"는 위구르어로 "휴식"과 "안식"을 의미한다고 하니
죽음을 영혼의 휴식으로 생각했던 옛 사람들의 긍정적인 생사관을 엿볼 수 있다.
관광지로 개발된 현재, 입구에 들어서니 이곳의 고분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는
"복희여와상"이 동상으로 되살아나 중앙에 우뚝 서있고,기념관 같은 망루가 있어서
그 위에서 보니 분묘들은 그냥 울퉁 불퉁한 벌판처럼 보이고 멀리 화염산이 다가 온다..
땅 표면에서 지하로 45도 방향으로 길을 만들고 묘실 입구에 문을 만들었다.
처음 들어간 216호분 묘실 정면에는 유교의 가르침을 풀이한 6첩 병풍이 그려져 있다.
그중 4첩은 왼쪽부터 앞가슴이나 등에 '옥인(玉人)','금인(金人)','석인(石人)','목인(木人)'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옥인은 청렴결백을, 입을 막은 금인은 언행에 신중함을,
금인과 마주보고 있는 석인은 돌처럼 결심이 굳어 흔들리지 않는 결심부동을,
목인은 거짓이 없이 올바른 무위정직을 뜻한다.

두 번째 묘는 상인의 묘다. 고향을 떠나 멀리 이곳 아스타나에 묻히면서
고향의 그리운 풍경인 꽃과 새를 벽에 그렸다.

또 하나의 묘는 부부 합장 묘인데 유리관 속에 전시되고 있다.
이 지역의 건조한 기후 때문에 자연 상태로 만들어진 미라가 많이 있다고 한다.

 

 

무덤속으로..

 

 

 

 

 

미이라..

 

 

 

 

 

세상속으로..

 

 

 

 

 

 

 

 

 

 

 

 

 

 

 

 

 

 

 

 

 

 

 

 

 

 

 

 

 

 잠시 밖에 나갔는데..

39.5도..

시간은 현지5시 30분경..

 

 

 

 

 

어디게..

보이나요..

저곳을 올라가는 모습이..

 

뭐 가이드말로는 가이드 책임없다 각서쓰고 올라간다는데..

얼마나 더우면 ..

 

화염산...

 

 

 

 

종합 관광입장표..

이 한장으로..

 

밑에보면 교하고성.칸얼징.화염산.아스타나고분.보쯔커리커천불동 등등

우리가 구경한 장소가 보인다..

 

편하게 해놓았다..

 

 

 

천불동... 

 

 

***첸포둥 [ (천불동), Qian fo dong]

 

중국 간쑤성[] 장예[张]에 위치한 석굴.

북량(涼)시기에 만들어진 석굴이다. 현재 남아 있는 불감(龛)은 절벽을 따라 자연적으로 남(), 중(), 북()의 3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남단과 북단에서는 불상이 있는 석굴이 위주이고 북단에서는 부조석탑림()이 유명하다. 

북단 윗부분에는 수십 개의 석탑이 있는데, 대부분 원(), 명()시기에 만들어졌으나 일부는 서하(西)시기에 제작되었다. 석탑은 일반적으로 탑좌(), 탑신(), 수미좌(须弥), 상륜(轮), 찰반(盘), 탑정상(顶)으로 구성된다. 
남단의 1, 2호 동굴은 북량(涼) 시기에 만들어졌다. 1호굴 내에는 북위()시기의 불상 하나가 있으며, 2호굴의 중심은 가늘고 길게 동굴 천장으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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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제크리크(柏孜克里克) 천불동 -당대(唐代) 서주 지역에 위치한 석굴이다. 오늘날 신강 투르판 동서쪽 40여 ㎞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현존 동굴은 83개로서 이 가운데 벽화가 있는 것은 40여 개이고 벽화가 보존된 총 면적은 1200㎡이다. 동굴은 6세기에 개착하기 시작하였다. 당대에는 영융굴사(寧戎窟寺)라고 칭해져 일반적으로 영융사라고 하였으며 후에 회골 고창왕국의 사원이 되었다. 명대(明代) 중엽에 폐기되었다.

건축 공예는 주로 세 가지의 형태를 띠고 있다. 절벽 내부를 판 것, 절벽 내부를 판 후에 흙으로서 돌로 겹쳐 쌓은 것, 완전히 흙을 무너뜨려 절벽 앞에 돌을 쌓은 것 등이다. 당말 오대 송초의 벽화는 석굴 예술의 정수이며, 구자(龜玆), 우전 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같은 시기의 돈황 석굴과 비교하여 전형적인 당대의 풍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14세기 이슬람의 침입이나 20세기 독일의 르콕(Lecog), 일본의 오타니(大谷) 탐험대에 의해서 도굴당하였다.

 

 

 

 

 

 

 

 

 

 

 

 

 

 

 

 

 

 

 

 

화염산과 천불동...

 

 

 

 

 

 

 

 

 

 

 

 

 

 

 

 

 

 

 

 

 

 

 

 

 

 

 

 

 

 

 

 

 

 

 

 

 

 

 

 

 

 

 ** 火焰山(화염산)

  약 1km에 이르는 거대한 산으로 투루판 분지의 북부에 위치해 있다. 고창고성, 아스타나고성, 백저커리커즈불동을 볼때 그 뒤로 서있는 산이 바로 이 화염산이다. 동서 길이가 100km, 남북 길이가 9km에 달하며 최고 높은 봉우리가 해발 851m다. 산은 대부분 홍사암으로 되어 있고, 정상위의 풀도 길게 자라지 못한다. 또 약 40년 전에는 이곳 극단의 최고온도가 48.5도에 달해 중국에서 가장 높은 기온으로 기록되기도 했었다. 그때 지면의 온도는 82.3도에 다달았고, 이렇게 화염산의 온도가 높은 것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분지가 태양을 향해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위구르인은 이 산을 "구즈로다고", 즉 빨간산이라고부른다. 또 서유기에서 삼장법사 일행이 화염산의 불길 때문에 고초를 겪는 사건의 무대로 등장하기도 한다. 천산의 억센 힘줄이 불끈솟아 이루어졌다고 하는 이 산은 불길이 치솟는 듯이 보여 그 이름도 화염산이라 붙여지게 되었다.

 

 

 

 

 

 

 

 

 

 

 

 

 

 

 

 

 

 

 

 

 

 

 

 

 

 

 

차창밖..

 

 

 

 

 

 

 

 

 

샨샨마을..

쿠무타거사막을 가기위해 잠시 ..

 

 

 

 

 

 

 

 

 

 

 

 

 

 

 

 

 

 규모가 있는 할인매장에서..

 

 

 

 

 

 

 

 

 

 

 

 

 

 

 

 

 

 

 

 

 

 

 

 

 

 

 

차창밖 세상...

 

 

 

 

 

 

 

 

 

 

 

 

 

 

 쿠무타거사막..

 

***  쿠무타거사막 [库(고목탑격사막)]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투루판[]에 위치한 사막.

 

투루판[] 분지 내 산산현[鄯县] 현정부 소재지 남부에 자리하고 있다. 위구르어모래산을 의미하며, 동서 간 길이 62㎞, 남북 간 폭 약 40㎞, 총 면적 1,880㎢이다. 그다지 넓지 않음에도 기복 있는 사구가 아름다운 곳이다. 사막 인근에 사산공원[园]이 조성되어 있으며, 공원 내에서는 낙타를 타 볼 수 있다.
 

 

 

 

 

 

 

 

 

우리짐..

 

 

 

 

 

 

 

 

 

 

 

 

 

저녁을 먹고 사막으로 들어간다..

일몰이 보고 싶었는데..

해 넘어간지가 옛날..

 

 

 

야영 마지막 만찬..

 

누가 없는것 같어~~

 

 

 

 

 

 이렇게

사막에서 마지막 야영을 마치고...

 

 

 

 

  배낭과 항상 생활하실길...

             

 

치밭목 산장(조권식) 올림 치밭목산장 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