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흔들리는 억새..
그곳은 명성산.
이번에 회사 산악회에 다시 가입하여 명성산을 다녀왔다..
월만원에 한달에 한번씩.
부담없는 회비.
가족산행이라는것.
단지 그룹산행이라는점.산행코스가 바뀌수있다는점.
그래도 산에 올라 땀을 흘릴수 있다는것이 참좋다..
담 산행때는 누구좀 꼬시어 같이 산행을 해야겠다..
얼굴들은 간간히 알고있는데..
구지 같이 산행은 하고싶지않다는것..
담에 보면 산행을 함께할수있겠지..
산정호수가 있고.억새가 좋은 명성산..
가을맞이 사진 몇장 찍어 올려본다..
* 산행 날 : 2009년 09월 20일.
* 산행장소 : 위 지도.
* 산행코스 : 산안고개--산안폭포--안부--삼각봉--삼거리--자인사
* 산행시간 : 시계는있는데 시간은 모른다.
* 산행날씨 : 좋다..
* 산행도우미: 회사 산악회..
♣ 명성산(922m.경기 포천시 이동면 영북면, 철원군 갈말읍)
가을철이면 억새산행 대상지로 유명한 산이다. 수도권 억새 감상 1번지로 꼽히는 명성산(鳴聲山, 922.6m)은 서울에서 동북으로 84km, 운천에서 약 7km 거리에 위치하며 산자락에 산정호수를 끼고 있어 등산과 호수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겨울 산행으로도 각광받는 곳이다.
태봉국을 세운 궁예의 애환이 호수 뒤편에 병풍처럼 펼쳐진 웅장한 명성산에 숨겨져 내려온 전설이 있는데 망국의 슬품을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고 하는 설과 왕건의 신하에게 주인을 잃은 신하와 말이 산이 울릴 정도로 울었다는 설과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입산할 때에 산도 슬피 울었다는 등 그 후 울음산으로 불리우다 울"명"자 소리"성"자를 써서 명성산으로 불린다는 전설이 있다.
경기도 포천군 영북면과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경계를 이루는 이 산의 산세는 풍수지리상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형이라 한다. 명성산의 산정호수의 물줄기는 영북면 농토를 살찌우고 있다. 명성산 주능선 동쪽 수십만 평 넓이에 펼쳐지는 억새 군락은 본래 울창한 수림지대였다. 이것이 억새군락으로 변한 것은 6.25 전쟁 때 피아간에 격전을 치루면서 울창했던 나무들이 사라지고 나서다.
명성산 등산은 등룡폭포계곡 코스와 자인사 - 삼각봉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자인사 코스는 급경사로 인하여 해빙기에는 미끄럼,낙석사고가 빈번하다. 최근에는 등룡폭포 못미처인 비선폭포 아래에서 왼쪽 암릉으로 오르는 책바위 코스가 인기 있다.
자인사는 1949년 서울 명륜동에서 창건되어, 1965년 5월 지금의 자리로 옮긴 절이다. 현재의 터는 옛날 왕건이 궁예에게 결전의 반격을 가하기 전 바로 여기서 산제를 지내 산신의 도움으로 승전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왕건에게 대패한 궁예가 도망친 루트는 동쪽이라는 얘기도 있다. 명성산 남동쪽 백운산에서 화천으로 넘는 고개인 '도마치'는 당시 궁예가 '도망칠 때' 넘어간 고개라는 전설도 있다.
버스 가는데까지가서 ..
들머리에서 본 명성산..
산안폭포..
저 웅장한 폭포가
가뭄이라 많이 아쉽다..
안부에 붙어서 본 세상..
뭐 아직 뚜렷한 볼거리는 없다,,
가야할길..
뭐 한다고 선두에 붙어 일찍올라와..
한장..
생각없이 긴 오름길을 땅만 보고올라와
명성산 정상은 못갔다..
300m라하는데 갈 생각없다...
오늘은 이곳 삼각봉이 정상이다..
내가 오른 잴 높은곳이 그날 산행지 정상이다..ㅎㅎㅎ
역시 높은곳에 올라오면 세상이 보인다..
시야도 한층 넓어지고..
한 10년만에 이곳에 오나..
오른쪽 봉이 삼각봉..
가운데 평평한곳이 명성산 정상..
바위 한쪽은 가을 옷을 입고있다..
시간도 많이 남고
하산코스가 변경되었다하여..
한장..
억새가 실실 보인다..
내가 산에 왔다고 ..
몇 개넘었다..
그 만큼 하산시간이 되어간다..
이른 억새지만 사람에 치이고
먼지에 코막히고..
한가로이 이른 억새을 구경하는것도 괜찮다..
기갑 전술 훈련장...( 맞나)
이곳은 아니지만 연천에서 내 애마가 포을 쏘고 달리곤했는데..
힘들었지만 폼은 났는데..ㅎㅎ
산정호수가 보인다..
팔각정에서..
자인사..
명성산(鳴聲山) 자인사(慈仁寺)는 궁예왕 ( ?-918 )께서 서기 901년 송악(松岳:개성)에 도읍(都邑)을 정했다가 5년후(서기905년)에 지금의 철원으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태봉(泰封)이라 칭(稱)하고 연호를 수덕만세(水德萬歲)로 개칭한 후 ,그의 휘하 부장이었던 왕건 (877-943)을 시켜 후백제를 공격했을 때 왕건은 산자수명 이곳에서 산제(山祭)를 지내고 꿈에 현몽을 받아 승전했고, 이를 인연하여 훗날 궁예왕이 왕건의 군사에 밀리고 쫓겨 지금의 명성산성(약4-5Km 전방에 산성이 현존함)에 진을 쳤을 때,이곳 커다란 바위에다 제사상을 차리고 자주 기도를 올리던 ‘터’라 하여 ‘잿터’ 라고 불렀다. 뒷산을 명성산(鳴聲山)이라 한것도, 구만동이라는 고을이름도 모두 이런 맥락에서 붙여진 이름이리라. 재를 올리고 기원하던 ‘터’ 라 하여 ‘잿터’ 요, 궁예왕 의 군사나 식솔들의 울음소리가 끊일 줄 몰랐다 하여 명성산이요, 하염없이 철원 쪽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며 시름에 잠긴 궁예왕에게 충신들이 “이제 그만 들어가십시오, 그만하십시오” 했다 하여 그만이 구만으로 불려진 이름인 것이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태조에 재위하자 이곳에 조그만 암자를 세우니, 그의 시호를 따서 절 이름을 신성암(神聖庵)이라 명명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해 왔으나 300여년이 지난 후 산불에 의해 소실되자 충열왕 3년(1227년)에 다시 재건하고 암자 이름을 왕건의 자호를 본따 약천암(若天庵)이라 했다. (전통사찰풍수기 : 향토연구가 이우영記) 그 뒤 거란침입과 몽고침략, 6.25 사변등 수많은 전란을 거치는 동안 남북의 길목이 자주 전쟁터이며 혈전이였던 관계로 정확한 문헌과 역사적 기록은 모두 소실되고 오로지 민가의 구전으로 전하는 이야기와 절의 형체는 간 곳 없고 절터만 남아 있음이 안타까운 노릇이다. 1964년 5월 김해공스님께서 현지에 허물어진 축대와 옛 법당자리로 추정 되는 곳에 주춧돌만 몇 개 나뒹구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이곳을 말끔이 다듬고 석고로 된 18척의 미륵불 입상을 조성한 후 13평의 조그만 암자를 세우고 절 이름을 자인사(慈仁寺)라고 명명하였던바 , 그 의미는「미륵」이란 말의 본뜻이 불가(佛家)에서 자비(慈悲)라는 말이고 , 궁예왕이 미륵세계를 구현코자 함의 숭고한 정신을 받들고, 慈仁이란「仁」자는 용서와 화해의 의미를 담고 있는 글자라 하여 영계(靈界)에서 나마 궁예왕과 태조 왕건의 “맺힌 악연( 惡緣)을 풀고 미륵세계를 구현하소서.” 하는 기원의 의미로 지어진 절 이름이었다. 1993년 지금의 정영도 스님이 국민관광지에 어울리도록 석고 미륵불이 서계시던 곳에 「극락보전」을 다시 짖고 미륵좌불(彌勒座佛)을 새로 조성하여 오늘에 이르른 것이다. 석불 외에도 관세음보살상과 몇 개의 석탑이 오밀조밀하게 구색을 갖추고 있습니다.
회사 산악회로서 20년째이다..
산정호수..
행사후 막걸리을 한잔씩 한다고하여
그냥 주차장으로 내려오면서
인사차 그냥 올려봅니다..
이제 단풍을 계절인 만큼 늘 행복한 산행.
무탈한 산행되실길...
배낭과 항상 생활하실길...
치밭목 산장(조권식) 올림 치밭목산장 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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